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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Kuk IL

[1 DEC 2016, 한국일보]“역사처럼 소리도 왜곡 없이 전달돼야죠”



 

23년 동안 메탈 스피커를 제작한 스피커 디자이너 유국일씨가 자신의 작품 '혜성'을 설명하고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갖게 되면 아이는 양수 안에서 화이트 노이즈(백색 소음)를 듣고 자라나게 돼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소리죠. 전시를 열면 꼭 그런 힐링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유국일의 메탈스피커: 원음 그대로’ 전시를 시작한 스피커 디자이너 유국일(51)씨는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 전시는 보고 듣고 공간을 느끼는 전시다. 자리를 함께한 갤러리 2관 전시실에서는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경북 울진군 공석항의 파도가 큐브 형태로 제작된 유 디자이너의 스피커를 타고 넘실거렸다. 한국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한 황병준 사운드 엔지니어가 유 디자이너의 스피커를 위해 특별히 녹음한 것이다. 유 디자이너는 “눈을 감으면 마치 그곳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큐브 형태의 스피커에서는 울진 앞바다의 파도소리가 흘러 나온다. 더페이지갤러리 제공

 

유 디자이너는 홍익대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하고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93년부터 메탈스피커 제작을 시작한 그는 끊임없이 ‘원음 그대로’를 전달하는 이상적 스피커를 좇았다.

그는 스피커 주재료로 메탈을 고집하는 이유를 “진동과 무게는 반비례한다. 스피커 통이 울리면 원래의 소리가 주변 진동과 섞여 왜곡된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그의 스피커는 그래서 한 대당 무게가 기본 100㎏, 무거운 것은 무려 300㎏에 달한다. 나무로 만든 스피커에 비해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전시에서는 별과 우주의 모습을 형상화한 ‘혜성’, 큐브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수직과 수평’,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셀레나의 말’을 소개한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에 위치한 달의 여신이 모는 말에서 모티프를 따온 ‘셀레나의 말’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다. 배경에는 “역사가 왜곡 없이 다뤄져야 하듯, 소리 또한 음의 기록으로서 진실성 있게 전달돼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있다.

작품마다 보이는 독특한 외관과 등고선의 패턴은 철저히 ‘소리를 위한 디자인’이다. 유닛 주변이 평평할 경우, 소리의 마찰이 발생해 음의 회오리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곧 음의 왜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는 등고선 패턴을 특별히 고안했다. “디자인을 하며 1㎜도 타협하지 않는다”는 그는 기술특허 8개, 디자인 특허 32개 등을 보유하고 있다. 레드닷, IF, CES 등 세계 저명 디자인상도 여럿 받았다.

스피커 전시답게 곡 선별에도 특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1관은 별ㆍ우주 등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이, 2관은 관람객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파도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3관은 관람객 취향을 반영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고요.”

소리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경건함 그 자체다. “튜닝 일정이 잡히면 전날부터 굶어요. 아침에 일어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밖을 내다보고 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듣고 느낄 뿐이죠. 듣는 모든 음에 몸이 신경질적인 상태가 되죠.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 가량 작업을 하는데,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맥주만 조금씩 마십니다. 한 일주일 정도 작업을 하면 4㎏ 정도 빠져요.”

명성을 얻기 전까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급 오디오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히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뭐’ 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은 기본이고 문전박대 당한 적도 굉장히 많았다”는 유 디자이너를 이제 세계는 ‘마이스터’라 부른다. 세계최고 음향 유닛 업체 독일 아큐톤(Accuton)과 협업하고, 아이리버사와 함께 개발한 고급 휴대용 음향기기는 4년 연속 세계 판매량 1위다.

그러나 “스피커 디자이너로서 ‘원음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그의 철학은 변함이 없다. “소리를 개량해 전달할 수도 있고, 과장해 전달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음악에 저의 메시지를 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음을 만든 사람이 애써 전달하고자 한 것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게 제 평생의 바람입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