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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 Katz

[2019 매일경제]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알렉스 카츠…60년간 아내 즐겨 그린 ‘빛의 예술가’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알렉스 카츠…60년간 아내 즐겨 그린 ‘빛의 예술가’

 

  • 입력 : 2019.12.02 10:13:13   수정 :2019.12.03 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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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자를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60년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애정으로 그녀를 그린 화가가 있다. 평생 자기 부인을 즐겨 그렸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빛의 예술가,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년)처럼 말이다. 심지어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내를 그리는 그의 열정은 여전하다. 추상화가 대세던 1950년대 뉴욕에서 모두가 구상화를 구시대적이라 폄하하며 비웃을 때 가족과 친구들을 화폭에 담으며, 꿋꿋하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구축해나간 예술가. 결국 자신이 바라던 대로 ‘완전히 새로운 멋진 회화’를 창조해 오늘날에는 전 세계 컬렉터는 물론 모든 세대 화가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는 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원로 예술가 알렉스 카츠(Alex Katz, 1927년생)다.
 
1987년작 ‘에이다와 루이스(Ada and Louise)’. 채도가 높은 바다와 하늘색이 특징적인 뉴잉글랜드 지역의 미학을 잘 반영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2019년 3월 7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출품돼 추정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약 94만파운드, 약 14억원)에 낙찰됐다.

사진설명1987년작 ‘에이다와 루이스(Ada and Louise)’. 채도가 높은 바다와 하늘색이 특징적인 뉴잉글랜드 지역의 미학을 잘 반영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2019년 3월 7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출품돼 추정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약 94만파운드, 약 14억원)에 낙찰됐다.

그가 평생의 반려자이자 뮤즈가 될 에이다(Ada Katz, 1928년생)를 만난 것은 1957년 가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 오프닝이었다. 우아한 고전미에 현대적인 세련미, 거기에 지성미까지 갖춘 그녀에게서 카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곧바로 데이트 신청을 한 그의 용기에 힘입어 둘은 곧 연인이 됐고, 이듬해 2월 결혼에 골인했다.

‘검은 스웨터를 입은 에이다(Ada in Black Sweater, 1957년)’는 둘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린 초기작의 좋은 예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남자 친구 화가 앞에 부끄러운 듯 긴장한 채 포즈를 취한 젊은 에이다. 사랑의 힘이었는지, 비록 초기작이지만 짙은 눈썹에 아몬드처럼 길고 고운 눈과 부드러운 입매 등 에이다라는 인물의 특징이 완벽하게 잘 포착돼 있다. 앞으로 200점 넘게 그려질 그녀의 초상화를 위한 몽타주 같은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1958년 에이다와 결혼한 후 카츠는 본격적으로 그녀를 그렸다. 그녀의 얼굴 골격과 외모는 카츠에게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녀를 통해 그는 자신이 원하는 회화 스타일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했고, 점차 더 형태를 평평하고 과감하게 단순화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구상화라고 하기에는 묘사가 너무 불충분하고, 추상화라고 하기에는 대상이 너무 분명했던 탓이었을까.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새로운 스타일로 인해 카츠는 평론가와 동료 예술가, 관객 모두로부터 엄청난 악평에 시달려야 했다. 작품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하거나 아예 전시장을 박차고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을 정도다.

묵묵히 혼자 작업하기는 했지만 카츠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을 줄 아는 지적인 화가였다. 돌이켜보면 그의 진솔한 초상화는 전후 미국 미술의 양대 산맥이었던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라는 정반대 성향의 두 가지 예술 양식에 대한 나름의 반응이었던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팝아티스트들처럼 그도 영화, 텔레비전, 또는 옥외 대형 광고판 이미지 같은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던 것.

대상에 대한 워홀의 무덤덤한 접근처럼 카츠의 그림 역시 주제 묘사에 있어 장식이나 감성적 측면을 제거해 서늘한 느낌을 줬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차가운 기계 미학을 추구하는 팝아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예술가 자신의 독특한 관점과 화가의 붓질이 지니는 따뜻함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주관적 표현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는 추상표현주의에 더 가까웠다. 사실상 카츠의 초기작을 보고 그를 격려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데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추상화 거장의 격려를 받은 이래로 카츠는 재현적 회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아가 주제에 대한 정직한 초상화를 통해 그는 당대의 상반되는 예술 양식을 혼합해 미국적 사실주의 회화를 창조해냈다.

일례로 1972년작 ‘파란 우산 II(Blue Umbrella II)’를 보라. 우선 인물을 대형 화면 전체에 클로즈업한 과감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에이다 특유의 우아한 표정에 맵시 있는 스카프 등 세부 묘사가 꼼꼼하게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사실주의적 재현이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같은 도식화를 통해 전반적으로 서늘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쏟아지는 빗방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무표정, 광고판을 연상시키는 캔버스 비율과 크기 등으로 인해 에이다는 마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은막의 스타 여배우 같은 인상을 준다.
 
(왼쪽)1972년작 ‘파란 우산 II(Blue Umbrella II)’. 인물을 화면 전면에 클로즈업한 과감한 배치가 특징적인 이 작품은 런던의 한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4배가 넘는 금액(약 35억원)에 낙찰돼 카츠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오른쪽) ‘검은 스웨터를 입은 에이다(Ada in Black Sweater, 1957년)’. 카츠의 전시 오프닝에서 둘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린 초기작. 전체 골격 등 앞으로 200점이 넘게 그려질 에이다라는 인물의 특징이 잘 포착돼 있다.

사진설명(왼쪽)1972년작 ‘파란 우산 II(Blue Umbrella II)’. 인물을 화면 전면에 클로즈업한 과감한 배치가 특징적인 이 작품은 런던의 한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4배가 넘는 금액(약 35억원)에 낙찰돼 카츠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오른쪽) ‘검은 스웨터를 입은 에이다(Ada in Black Sweater, 1957년)’. 카츠의 전시 오프닝에서 둘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린 초기작. 전체 골격 등 앞으로 200점이 넘게 그려질 에이다라는 인물의 특징이 잘 포착돼 있다.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특별하게 탈바꿈시키는 것은 화가로서 카츠가 지닌 탁월한 재능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적 이미지와 모델의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화면 자체의 2차원적 평평함과 인물의 도식화로 인해 팝아트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구상화와 달리 대형 광고판의 미학을 반영하는 그래픽 디자인 같은 생생한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창조한 것이다. 동시에 색면화에 가까운 배경 처리는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라는 양가적 요소가 동시에 배치돼 카츠의 그림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내뿜는다.

또 다른 예로 1987년작 ‘에이다와 루이스(Ada and Louise)’를 보자. 이 작품은 무사태평한 어느 봄날의 아름다운 한 순간을 포착했다.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고, 얇은 꼬리 형태의 구름이 화면 전체에 늘어져 있다. 캔버스 왼쪽에는 햇살에 검은 머리카락이 반짝이는 에이다가 우아하게 앉아 있다. 오른쪽에는 그녀의 어머니인 루이스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 챙이 넓은 모자에 얼굴이 반 정도 가려진 채 앉아 있다. 카츠 집 앞 해변이 배경으로 모녀는 바다를 마주한 벤치에 편안하게 앉아 있다. 채도가 높은 바다와 하늘색이 특징적인 뉴잉글랜드 지역의 미학을 잘 반영하는 매력적인 그림이다.

이 작품도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로 대변되는 구상과 추상이라는 두 가치를 카츠가 어떻게 적절히 배합했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에 실외의 빛을 주제로 했던 인상주의에 대한 미술사적 참조도 녹아 있다. 표면상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두 여인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한 작품이 아닌 것이다. 이 그림에서 하늘과 물은 대서양 연안의 바람 부는 환경을 담은 듯 생생하다. 모네, 르누아르같이 화면 전체에 햇빛이 재현돼 있다. 하지만 인상주의 회화와 달리 그의 초상화는 밝은 색채, 전광판 크기, 그래픽 라인 등 팝미학을 수용하고 있다. 구상이면서도 디테일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하늘과 바다를 상쾌한 직사각형으로 기하학적 추상에 가깝게 평평하게 묘사한 부분에서는 추상화의 면모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신비하고 기념비적인 영화 같은 순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카츠의 마법에 걸려 있다. 우리도 카츠 같은 시선으로 일상에 마법을 걸어보면 어떨까.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5호 (2019.11.27~2019.12.03일자) 기사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9/12/1004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