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태풍을 견디고 순풍에 돛달아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진다. 숨 돌릴 틈 없이 더 큰 태풍이 들이닥쳐도 떨리는 두려움으로 필사적으로 맞선다. 그것이 존엄이고 희망이다. 임흥순은 <기억 샤워 바다> 전시로 오랜 시간 숨겨지고 가려지며 뜯기고 흩어져 바랜 기억들을 제주 4·3 평화기념관 기획전시실과 로비에서 고요히 드러내고 연결한다. 김동일의 유품에 엮인 기억들이 빛처럼 쏟아지며 녹아든 바다, 그 바다에 국경 없이 역사에 떠밀린 개인들의 아프고 복잡한 삶이 얽혀든다. 작가는 이 전시 공간을 고립이면서 동시에 연결인 바다,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 삶과 죽음,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 그물을 짜고 있는 생명들이 한데 만나 공감하고 이해하며 애도하고 추모하는 그런 기억의 바다로 만든다. 생명의 기원인 바다가 고통을 치유하며 우리 삶의 지속성을 여전히 유지해낼 수 있을까? 저 과거에서 밀려든 기억의 소리가 현재와 미래에 어떤 생명의 소리가 될 수 있을까? 기억하지 않는 억압의 역사는 반복될 뿐만 아니라 기억의 억압을 개개인이 다시 당하는 수모를 겪게 만든다. 결국 임흥순은 이 전시에서 김동일의 유품을 나누고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시공간적으로 연결된 우리들 역사를 기억하며 4·3을 추념하고 개인을 기억하며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특별한 애도 방식인 새로운 기억문화를 체험하게 한다.
September 16,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