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디자인하우스] 105년 뒤에도 살아남을 중국 작가



재미는 있으나 철학이 빠진 작품, 의미는 있으나 즐겁지 않은 작품은 가라. 우리의 백남준처럼 중국에서 추앙받는 1세대 작가 쉬빙의 작품은 재미와 의미 모두를 관통한다. 전문가가 꼽은 ‘앞으로 105년 뒤에도 살아남을 작가’라니, 지금부터 주목할 것.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 전문 잡지 <아트뉴스 Artnews>가 창간 105주년을 맞아 ‘105년 뒤에도 살아남을 작가’를 선정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작가로 백남준이 있었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 중에는 앤디 워홀, 오노 요코, 리히터, 신디 셔먼 등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중국 작가 중에는 한동안 미술 시장을 뜨겁게 달구던 스타급 작가들은 찾아볼 수 없었던 반면 다소 생소한 인물, 쉬빙 徐氷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내에서 쉬빙의 존재감을 제대로 확인한 일이 있다. 지난 7월 중국 금일 今日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현대 판화전>의 오프닝 행사에서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모은 기획전이었는데, 오프닝에 쉬빙이 등장하자 수많은 관람객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나라로 치면 살아생전의 백남준이 전시회에 나타났을 때의 반응과 비슷했다.
쉬빙은 문화대혁명기를 경험한 1세대 작가다. 정치적 박해가 심했던 문화 혁명기에도 묵묵히 작품 활동을 했던 그가 천안문 사태 이후 끝내 미국 망명을 택했다. 천안문 사태 때 ‘인민은 학생 편이다’라는 대형 포스터를 만든 후 정부의 심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망명 후 뉴욕 브루클린에 살며 정체성과 전통문화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에 전념했다. 그 결과물인 첫 전시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만리장성을 탁본으로 떠서 전시장에 설치한 대형 작품이었다. 쉬빙은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복제되고 해체된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위)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합성시대:매스컴 차이나 2008>에서 ‘땅에 쓰는 서예’(2006)를 선보인 쉬빙.



폐건축자재로 만든 작품 ‘봉황’, (2008).

설치 작품인 ‘천상의 책’도 흥미롭다. 목판 인쇄로 글자를 찍어낸 종이를 전통 방식으로 제본한 책 3백여 권을 전시했는데, 언뜻 보면 평범한 설치 작업이다. 허를 찌르는 것은 각각의 글자다. 중국어 같지만 획과 부수가 다 오류여서 읽을 수 없다. 쉬빙이 발명한 문자(3년 동안 총 2천여 개를 만들었다)로, 언뜻 한자 같지만 각 부수가 사실은 영어 알파벳이다.
기발한 설치 작품이 또 있다. 3년 전 우리나라 광주 비엔날레의 전시 작품인 ‘배경 이야기’다. 한눈에 보기에 농담 표현이 유려한 산수화. 가까이 살펴보면 또 허를 찌르는 장치를 발견한다. 나뭇잎, 나뭇가지, 지푸라기 등 자연물을 스크린 뒤에 설치해 입체 풍경을 만들고, 반대쪽에서 조명을 비춰 ‘그림자 산수화’를 만들었다. 스크린 앞에서 보면 평면 산수화이고, 뒤쪽에서 보면 입체 설치 작품이다.
이렇듯 쉬빙은 전통문화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중국 문화를 향해 침투해오는 서양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진지한 작가다. 의미를 찾으면서도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문자나 문화유산을 탐구하고 여기에 위트를 버무린 그의 독특한 화풍을 보고 있자니 ‘학구적인 유머’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의 학구적인 유머는 점점 진화하고 있다. 최근의 신작은 공공 표지판 사인을 닮은 아기자기한 그림 문자를 개발해 글을 쓴 작품이다. 영어든 한자든 글을 몰라도 읽고 쓸(키보드를 누르면 문자가 입력되는 방식) 수 있으니, 언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의 소통도 문제없다.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문화가 자유롭게 결합하고(+), 해체되는(-) 세상, 문화의 거국적인 사칙연산이 일어나는 가운데 쉬빙이 종횡무진 탐닉하는 창의적인 유머에서 삶의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배경 이야기’, 2006
 
 
 

나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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