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금속조형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스피커를 디자인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앞으로 무엇에 인생을 걸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때 사진과 스피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고 했죠. 어렸을 때부터 사진과 음악을 워낙 좋아했거든요. 돈을 모으기가 무섭게 카메라, 오디오, 앰프를 샀어요. 처음 산 스피커는 탄노이(Tannoy)였습니다. 처음 듣고 소리가 정말 좋아서 충격을 받았죠. 그러다가 궁금해서 스피커를 뜯어봤어요. 그런데 너무 실망했습니다. 물론 비싼 부품을 쓴다고 소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몇백만 원, 많게는 몇천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스피커 안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것들로 채워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음악과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속조형이 전공인지라 자연스럽게 금속과 소리를 연결해 금속 스피커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금속을 재료로 한 하이엔드 스피커만 디자인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처음 시작하고 2년 정도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일단 스피커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웃음)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다른 ‘무엇’이 있는데, 그 거쳐야 하는 것들은 단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가지 디자이너분야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타느탸 못 타느냐만 생각하는 거죠. 가끔 저는 뛰어가면 막차를 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막차를 타지 않고 걷기도 합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거죠. 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시간도 갖고요. 처음 스피커를 시작할 때 특히 그런 시간이 많았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결국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해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국일 대표님 하면 스피커가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스피커 외에 다른 제품 디자인은 하신 게 없나요?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라이카 MP 보디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반도카메라의 김효진 대표님의 도움으로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제 인생은 오디오와 음악 아니면 사진이었어요. 특히 라이카 카메라를 좋아해서 카메라의 고유 제품 번호만 대면 몇 년도에 생산한 건지 다 외울 정도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라이카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마 제가 라이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거예요.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좋아하는데, 구조적인 문제라든지 마감 처리 등 카메라에서 볼 수 있는 메커니즘은 금속 스피커를 디자인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November 2,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