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갤러리를 배경으로 배를 가른 나무판들이 바닥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통나무 하나가 무심히 툭 서 있을 뿐이다. 깎아 놓은 그대로의 나무들은 마치 조미료 없는 음식 같다. 의미를 곱씹을 것도 없이 순하고 심심한데, 자꾸 가만히 응시하게 만든다.
지난 5월 서울 성수동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조각가 나점수의 개인전 ‘함처(含處), 머금고 머무르다’의 풍경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나점수(54)는 당혹스러울 만큼 비어있는, 그래서 낯설기도 한 추상 조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