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틈새 깊은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까

메일경제
벌어진 나무 틈새는 매우 좁지만 깊은 어둠을 품었다. 그 어둠을 조용히 응시하는 시간 속에서 차분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습도나 온도에 예민한 나무로 조각하는 나점수 작가(56)의 작품 '무명(無名)-정신의 위치'(2020)다. 작가는 작품 재료가 될 나무들을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 야적하고 1년을 지켜본다.어느 날 문득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쩍 갈라진 나무는 여름 장맛비와 겨울 눈을 거치고 벌레의 집도 되는 등 계절의 변화를 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제시할까 작가는 고민했다. 그 산물인 목조각 20여 점을 모은 개인전 '무명(無名)-정신의 위치'가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다.
 
작품명과 전시 제목에 쓰인 '무명'은 단순히 이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한다. 작가는 조각이 위치한 공간 속에서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의미(정신의 위치)를 찾기 바란다고 전했다.
 
층고가 높은 전시장에 어색할 정도로 낮게 걸린 조각들은 관람객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나무를 가늘고 길게 파내 어둠의 공간을 만든, 수직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조각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품도 연상시킨다. 작가도 조각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고 있다고 했다.
 
작가는 "자코메티 조각은 흙을 붙이면서 동시에 뗀다. 그리고 떼어낼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존재 자체의 가장 마지막에 남아있는, 가느다란 형태에서 멈추는 것"이라며 "나는 내부에 공간을 잡는데, 바깥에 얇은 판이 있어야 내부 공간이 어둠의 무게로 다가오게 된다. (작품의 어두운 부분이) 일종의 에고(자아)의 그림자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길쭉하게 파인 홈은 나무 표면에 선으로 그어진 형상이 아니다. 먼저 홈을 파낸 뒤 홈의 양쪽 면을 깎아 파인 공간의 입체감을 드러낸다. 양쪽 면의 두께는 목재의 수축과 팽창을 고려해 작품이 변형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다. 20년 이상 목조각에 전념했기에 그 뒤틀림은 예측 가능하다.

작가는 철저히 혼자 작업한다. 톱으로 공간을 가를 때면 각도를 정확히 잡고 자세를 고정한 채 강한 믿음으로 내려친다. 초집중의 순간이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추상 조각이지만 젊은 시절 인생의 답을 찾으러 세계 오지를 탐험했던 작가 경험이 담겼다. 신장 웨이우얼에서 마주친 미라, 에티오피아 교회 사제들 해골 등 죽음과 대면한 경험에서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강하게 자각했다 한다.
July 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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